작성일 : 20-01-15 09:44
한 마리가 꿈틀
 글쓴이 : 고수현
조회 : 224  
어쩜 세상에, 저건 꼭 무지막지하게 큰 ‘장님거미’(=거미의 일종=키다리 아저씨. 키다리 아저씨의 원래 영어 제목이 ‘장님거미’임. 우리말로 하면 ‘다리가 긴 꺽다리’란 뜻임) 한 마리가 꿈틀대고 있는 것 같잖아.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눈살을 찌푸리다 급 웃음꽃이 핀 제루샤는 원래가 해맑은 영혼이었다. 그래서 전혀 웃기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평의원의 답답한 이미지에서 일종의 재미를 찾은 건 기대치 않은 소득이었다.
이 사소한 에피소드(사건)에 무척 기분이 좋아진 제루샤는 원장실로 계속 가, 미소 짓는 얼굴로 리펫 원장(이름 몰라도 됨. 다시 안 나옴)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얼씨구, 이 나이 지긋한 원장님 또한 정확히 말해 미소는 아니었지만 나름 상냥한 태도로 제루샤를 맞아주었는데,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입었던 옷만큼이나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제루샤, 앉거라, 네게 해줄 말이 하나 있다.”
제루샤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의자에 움츠리듯 주저앉아 숨죽인 채 기다렸다.
좀 전 그 자동차의 불빛이 원장실의 창문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리펫 원장이 그것을 뒤따라 흘낏 보았다. 
(리펫 원장의 대사→) “너도, 방금 막 나가신 신사 분을 목격했겠지?”
(제루샤의 대사→) “등만 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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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 평의원들 중에서도 가장 재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사람이란다, 지금까지 상당한 액수의 금액을 고아원 기금으로 기부도 하셨고 말이다. 엄밀히 말해 내가 그 분의 성함을 말할 권리는 없다. 그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남기를 기부의 조건으로 내거셨거든.”
이 부분에서 제루샤의 눈이 살짝 휘둥그레졌다.
별난 평의원에 관해 얘기하려 자신을 원장실로 부르는 건 원장의 평소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신사 분께서는 우리의 소년들 중 몇 명에게도 관심을 표하고 계신단다. 너도 기억하지? ‘찰리 벤톤’과 ‘헨리 프리즈’ 말이다.(두 소년 모두 몰라도 되는 이름임. 다시 안 나옴) 그 애들은 미스터… 이 평의원께서 후원해 주셨고, 그 애들도 열심히 노력한 결과 나름 성공할 수 있었지. 그 신사분이 바란 건 하나도 없었단다. 지금까지 그의 자선활동들은 모두 소년들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단다. 고아원에 있는 여자애들에겐 전혀 관심을 표하시지 않으셨지. 여자애들이 후원을 받을만한가는 둘째치고서라도 말이다. 그래 내가 네(제루샤)게 말할 수 있는 건 적어도 지금까지는 여자애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셨다는 것이다.”
“네, 원장님.”라며 제루샤가 옹알거렸다. 이 부분에서 자신에게 뭔가 대답을 요구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