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2-18 11:06
베네치아산 바늘
 글쓴이 : 이민우
조회 : 167  
생각을 안하려야 안할 수가 없는 게요, 아빠, 남자들은 색에 다급해하지 않잖아요, 모슬린(얇고 보드라운 모직물)이니, 베네치아산 바늘로 뜬 레이스니, 손으로 놓은 자수니, 아일랜드산 코바늘로 뜬 뜨개질이니 하는 말들에 그냥 담담하게 반영하잖아요.
반면 여자들은, 상대가 아기든 동물이든 남편이든 시인이든 가사도우미이든 수학 선생님이든 정원사이든 철학자든 일꾼이든… 기본적으로 그들이 입고 있는 옷에 항상 관심이 가기 마련이에요.
“세상 사람의 마음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이 문장 괜찮죠, 셰익스피어(영국 작가)의 풍자 희극인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에서 가져온 구절이에요.
하지만, 다시 얘기로 돌아와서, 나중에 알게 된 비밀 하나를 아저씨께 말씀드리고 싶은데 괜찮죠?
우쭐댄다고 말하지 않기에요.
그럼 말씀드릴게요. 들어보세요.
전 예뻐요.
정말 귀엽고 예뻐요. 아름다운 정도는 아니지만~
방에 거울이 세 개나 있는데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저 정말 바보죠.

어느 친구가.
www.wooricasinoda.com
추신.
이 편지는 당신이 소설에서 읽은 짓궂은 익명의 편지들 중 하나입니다. (←특별한 의미는 없고, 여주인공의 말장난임. 별 뜻 없음)
잠깐만요, 2시 수업에 참석한 다음, 여행 가방을 잽싸게 꾸려, 4시 기차를 타야하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아저씨께서 보내주신 크리스마스 선물박스를 받고 얼마나 감사했는지는 편지로라도 간단하게나마 알려 드려야 될 거 같아서요.
목도리와 목걸이 그리고 ‘리버티 원단으로 제작된 스카프’( )와 장갑과 손수건 그리고 책과 지갑까지… 대부분 제가 애정애정하는 것들이었어요!
하지만 아빠, 이런 식으로 저의 인성을 망치실 건가요.
저도 사람이라고요… 그것도 여자라고요.
이런 세속적인 기호품들로 저를 비트시면, 제가 어떻게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겠어요?
그러고 보니 〈존 그리어 고아원〉(여주인공이 나온 고아원)에서도 크리스마스트리와 일요일이면 아이스크림을 주시는 평의원 분 한 분이 계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강한 의심이 드는 걸요.
그 분은 이름이 없으셨어요, 하지만 익명으로 선물을 하시는 걸 좋아하는 게 꼭 누구와 닮아서요!
아이들에게 선사해주신 선물 때문에라도 언젠가 꼭 복 받으실 거예요.
잘 자요, 그리고 제가 심하게 메리크리스 마스라고 인사드리고 싶은 거 알죠~
www.wooricasinoda.com

이 편지가 너무 짧다고 절 나무라진 마여~
아셨죠~ 이건 편지가 아니에요.
이건 그냥 시험이 끝나는 대로 곧 편지를 쓰겠다고 한 제 말에 대한 약속 차원에서 보내는 거예요.
굳이 편지까지 보내는 이유는 제가 시험을 통과한 것일 뿐만 아니라 아주 ‘잘’ 치루었기 때문이에요.
아무래도 장학금을 탈 팔자인가 봐요.ㅋㅋ
커일러(흔치 않은 남자이름) 총장님(대학총장님)께서 오늘 저녁에 연설을 하셨는데요, 요즘 세대들이 까불고 천박한 것에 대해서...헐. -_-;;
총장님이 말씀하시길, 이 땅엔 지금 젊음의 열정과 학구열이 사라진지 오래래요. 특히 잘못된 권위에 대항하는 자세가 눈에 띠게 감소했다 네요.
게다가 연장자에 대한 경의 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데요. -_-+
그래서 반성하는 마음으로 채플(=예배)을 나왔어요.
제가 너무 버릇없게 편지를 쓰나요, 아빠?
아님 이제부터라도 좀 더 품위 있고 제 3자적 관점에서 편지를 적어야 할까요?… 넷, 말씀해주세요, 그럴까요? 이 편지도 다시 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