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단어를 몇 번 들어 봤을거야

‘서희의 외교담판’

아마 많은 사람들이 

‘서희가 오랑캐와 말싸움해서 이겨서 옛 고구려땅 일부를 얻었다.’

정도로만 기억하거나 더 길게 기억한다 해도,

소손녕: 고려는 옛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영토의 대부분은 우리 영역 안에 있는데 

어찌하여 옛 신라 땅에서 일어난 나라가 옛고구려의 영토를 가지고 있는 것이오? 

서희: 그건 말이 안 되오.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고려라고 이름을 지었고, 수도가 평양인 것도 고구려를 이으려는 뜻이었소.

따지고 보면 거란의 수도(요양)도 우리의 땅인데 누가 누구한테 침략을 한다는 것이오?

소손녕: 그럼 왜 우리와 더 가까운 위치이면서 송나라하고만 교류를 하는 것이오?

서희: 요나라와 교류를 못 한 건 여진족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러하오. 

여진을 몰아내고 그 땅을 우리한테 준다면야 어찌하여 요나라와 교류를 아니하겠소?

그리고 이 담판의 결과 고려는 거란으로부터 ‘강동 6주’를 얻어낸다 정도로 기억할거야

사실 이 외교담판의 진짜 의미, 그리고

외교관이자 정치인인 ‘서희’의 역대급 통찰력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려 해

이 이야기는 물론 읽기 쉽게 축약된 것이라,

생략되거나 조금 사실과 다른 것처럼 묘사된 부분이 있으니 고려하고 읽어줘

993년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고려 북쪽을 침공하고

‘봉산’지역에서 고려군을 말 그대로 

개털어버려.

그리고 고려 사신에게 으름장을 놓지.

‘우리에겐 80만의 군대가 있다. 고려는 빠르게 항복하라’

이 소식을 들은 고려 조정은 큰 패닉에 빠져.

920년대 발해를 멸망시킬 정도로 빠르게 강대해지던 거란이

최근 들어, 만주지역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터였고,

그 거란족의 전투력을 직접 확인했으니까.

당시 고려가 끌어 모을 수 있는 병력은 많아야 10만이었고

그마저도 병력을 모으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니

고려 조정에서는 어차피 패배할 전쟁 미리 항복을 하고

항복의 뜻으로 땅을 떼어주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지

그리고 서경 이북(평안북도지역)을 떼어주기 위해 모든 준비를 할 무렵,

‘서희’는 몇 가지 의문이 들어,

1. 80만이나 되는 군대가 고작 ‘유수’ 직책을 가진 지휘관의 지휘를 받아 움직인다.

(마치 사단장이 작전사령부급 군대를 끌고 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

2. 유목민족 거란은 기병대의 기민한 움직임으로 보름만에 발해의 수도를 포위하고 항복을 받아낸 전력이 있다. 

게다가, 군대가 80만이라면 병참, 보급을 유지하는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니 

빠르게 침공하여 적 영토를 수복하는 것이 이득임에도 저 군대는 2달 가까이 움직임 없이 주둔하고 있다.

라는 거지.

그래서 상황을 지켜보는 와중에,

추가적인 거란군과의 전투소식을 접했는데,

움직임이 역시 수상하다는 것을 파악해

거란군은, 고려군의 주 병력이 있을 ‘안북부’(안주성)가 아닌,

변방에 가까운 ‘안융진’을 공격해. 

그리고, 격렬한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가 밀리자 금새 병력을 뒤로 물리지.

정말 거란군이 고려를 정복하고 항복을 받아내고 싶었다면,

전투를 치르더라도, 안주성을 점령하고 안주성으로부터 서경(평양)까지 이어지는 

평탄한 길을 따라 쭉 내려오면 행정기구가 개성만큼이나 

밀집되어있던 서경(평양)을 점령할 수 있으니,

80만의 군대를 이끌고 안주성 군대와의 전투를 치르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

이 소식을 듣자 서희는 더 확실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지.

1. 80만의 병력이 아닌 훨씬 적은 부대를 이끌고 왔을 것이다.

2. 거란군의 군세가 강대한 것은 사실이나, 고려와의 직접적인 전투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3. 전투력의 소진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는,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희는 고려 성종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해.

“제가 거란의 소손녕에게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역대급 외교담판이 시작돼.

여기서 잠깐 거란(요나라)의 상황을 파악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