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1-26 06:14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글쓴이 : 진주꽃
조회 : 6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일본의 철포운용 상을 쓰고 나서 FM21을 새로 사서 하느라 다음글을 안썼네요.

17,18,19를 해봤지만 21이 진짜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34/35 시즌 되니 지쳐서, 글을 씁니다.




임진왜란이 나오는 책이나 영상 등을 보시면

'일본은 3개 조로 나누어 총을 쏘았는데,

그 때문에 조선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얘기가 종종 나옵니다.


A62A5580-72C6-4B0D-961B-2C1B4BB5F123.jpeg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why? 전쟁'에 나오는 한 장면.

이러한 사소한 오류들을 제외하면,

'why? 한국사' 시리즈는 일반인에게는 

최고의 한국사 책이라 생각한다.



오다노부나가가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케다군과 싸울때,

삼단철포로 다케다 군을 물리쳤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 반면, 지금은 '삼단철포설은 허구다' 라는 얘기는 이미 널리 퍼져있죠,

이것이 오늘 다룰 주제 중 하나입니다.




파커의 군사혁명론



중세시절 갑옷 입고 용병들이 설치던 중세와,

나폴레옹이 전열보병으로 전유럽을 떨게하던 시기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가 군사혁명론인데,

대충 설명하자면

'어떠한 이유로, 군대를 상시 주둔시킬 필요가 생겼고,

이는 군대의 유지비를 증가시켜, 국가 재정에 압박을 가했다.

국가 재정을 늘릴 필요가 있었던 유럽국가들은

여러 경제적 발전과 혁신을 모색했고,

결국은 유럽 국가들이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image.png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물론 각자마다 주장하는 시기는 다르다.

누구는 총의 발명을, 누구는 스페인의 테르시오를,

누구는 네덜란드의 군사개혁을, 누구는 스웨덴의 구스타프를 기점으로 본다.



이 급진적인 이론에 동의하는 학자들도 많았고,

말도 안된다며 반대하는 학자들 또한 많았습니다.

'국가가 발전하고, 그 뒤에 군대에 투자하는 것이지,

군대의 발전이 국가의 발전을 만든다는 것은 주객전도다' 라는 비판 또한 있었죠.


이렇게 군사혁명론이 한창 화제가 되던 중,

기존의 군사혁명론의 잘못된 점들을 수정하고, 새로운 군사혁명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바로 조프리 파커입니다.


조프리 파커의 군사혁명론 중에서, 총에 관한 내용만 다룬다면,


'네덜란드의 마우리츠 공이 군대를 엄청나게 훈련시키면서,

재장전 속도가 빨라지고, 단단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네덜란드 군대는 순차사격을 통해 화력을 지속시키면서,

빠르게 다가오는 기병에도 저항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유럽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영국, 프로이센, 스웨덴을 시작으로, 

전유럽에 퍼져나갔다.' 는 것입니다.


image.png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 떡밥 물고 왔는데, 이런 재미없는 내용이라니! 난 여기서 나가겠어! "


오다 노부나가의 삼단철포를 다루는데 왠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후의 내용을 다루는데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삼단철포의 신격화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 당시에는 삼단철포 어쩌구 저쩌구 하는 기록이 없습니다.

만약 있었다면, 지금 허구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이비겠죠.


전국시대가 끝나고, 통일 정권인 에도막부가 세워지고 나서,

당시 통속 소설에 오다 노부나가의 삼단 철포가 최초로 등장됩니다.

말 그대로 '소설'에 불과한거죠.


하지만 수백년 뒤, 메이지 시기, 

일본의 육군이 교과서에 삼단철포를 '사실'로서 기재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단번에 퍼지게 된 것이죠.


image.png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1942년에 저술된 일본 육군 교과서인 '대일본전사'

'삼단쏘기'가 등장한다.



이러던 중, 군사혁명론을 다룰 때 언급한 조프리 파커가 실수를 합니다,

유럽만 배경으로 하던 자신의 이론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무굴제국, 명나라 등등 유럽 밖 나라에서도 군사혁명의 예를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다 일본의 삼단철포설 떡밥을 덥석 물어버립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네덜란드의 마우리츠와 동일시되었고,

삼단철포설은 유럽을 휩쓴 네덜란드군의 전술과 비유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삼단철포설이 전세계에 퍼지는 순간이었죠.


image.png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이런 부분만 다루니, 조프리 파커가 무슨 사이비 역사학자 같지만,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근대 전쟁사를 상세히 다루었다.

군사 전술만 다루느라 허술한 점이 많았던 기존의 군사혁명론과 다르게

요새와 포위전, 보급 등등 다양한 방면으로 연구하여 군사혁명론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조국인 영국에서도 영국 학회상을 받았으며,

스페인에서는 대십자 훈장을, 네덜란드에서는 박사상을 받았다.





순차사격의 불필요




순차사격은 화력의 지속성을 위한 것입니다.

빠르게 접근하는 기병에게 저항하기 위해,

재장전 시간의 간극을 줄이기 위함이죠.


당연히 기병이 발달하지 않았던 일본은 

굳이 순차사격을 할 필요가 적었습니다.

그냥 무작위로 쏴도,

뚜벅이가 대부분인 일본 전국시대에서는 충분했죠.


말 비교.PNG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또또또 등장한 서양말(왼쪽)과 일본말(오른쪽) 비교


3명이 총을 각자 알아서 쏘나,

1명씩 돌아가서 쏘나, 화력은 똑같습니다.


오히려 순차사격은

각 조가 순서에 따라 앞뒤로 왔다갔다 해야하니, 육체적 피로가 생기고,

장교의 명령도 듣고, 자기 순서에 집중해야하니, 정신적 피로가 생기죠.


마우리츠의 네덜란드 군처럼 막대한 훈련을 시킨다면,

기본 사격과, 순차사격의 차이가 줄어들겠지만,

그 훈련도 다 시간이고 돈이죠.


image.png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일본은 수많은 세력들로 나뉘어 있었다.

네덜란드나 스페인, 영국 같은 재정적 여유를 확보할 수 없다.





특수한 상황에서는 있을 수 있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거리 병종에게 있어서, 역사적으로 순차사격은 늘 존재했습니다.

총이 발명되기 전, 석궁으로도 순차사격은 있었고요.

전진하면서 적을 압박할 때

후퇴하면서도 적에게 피해를 입혀야 할 때는

순차사격은 효과적이죠.

어차피 압박하거나 후퇴할 때 앞이나 뒤로 움직여야하니,

단점의 의미도 사라지고요.



image.png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image.png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송나라(왼쪽)와 명나라(오른쪽)의 병법에서의 석궁의 순차사격 그림.

왼쪽 그림 송나라의 경우, 적을 압박하기 위해서

각 조마다 사격, 재장전, 전진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그에 따라서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에스기 가문의 군법에 따르면

'후퇴할 때는, 한 조가 사격하는 동안, 한 조는 뒤로 이동한 후 장전하여, 사격준비를 해야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순차사격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특별한 것도 아니었고,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만 나오지,

일반적인 상황에선 쓰지 않습니다.

괜히 번거롭게 순차사격하면 화력이 줄어드니까요.





전투 개시 때도 있을 수 있겠지.


기병이 없으면 순차사격의 필요성은 줄기는 하겠지만,

어느정도는 필요할 것입니다.


총의 유효사거리를 200m로 잡고,

본격적으로 총의 화력이 최대에 도달하기 시작하는 거리를 100m로 잡으면,


총을 재장전하는 4,50초 동안, 충분히 두 발로도 주파 가능하니까요.


이 때문에 뚜벅이인 왜구랑 싸웠던 명나라의 척계광도,

순차사격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이는 군사개혁 후 유럽의 경우처럼 전투내내 순차사격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총의 최대 사거리부터는 무작위로 사격하다가,

적이 120m정도 접근하면 순차사격 한번 긁어주고,

그 뒤에는 총병은 후퇴하고, 뒤에 있던 냉병기 병사들이 돌진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image.png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image.png 오다노부나가의 삼단철포설

각 총병은 5개의 줄을 이룬다.

총을 쏘다가, 적이 100보 이내로 다가오면, 총병들은 사격을 멈추고, 대장에게 집중한다.

대장이 호루라기를 불 때마다 각 조가 총을 쏜다.

차례로 5번의 호루라기가 울리고, 5줄이 총을 쏜다.

5줄이 모두 쏘면, 북을 친다.

그러면 냉병기를 지닌 병사들이 북소리를 듣고 뛰쳐나와 근접전을 치른다.

-명나라 장군, 척계광이 쓴 기효신서에서-